소설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는 꿈 많은 소년소녀들을 위해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46살 때 쓴 작품이다. 1881년에 출간된 이 책은, 뒷날 영국의 왕이 되는 에드워드 왕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재미를 더해준다. 왕자는 어느 날 얼굴이 똑 닮은 거지의 아들 톰과 옷을 바꿔 입는다. 왕자는 거지가 되고 거지는 왕자가 된 것이다.
가난뱅이(Pauper ․ 구걸하는 Beggar는 아님)이자 알코올중독자의 아들로 태어난 톰은, 마을 신부로부터 틈틈이 라틴어를 배워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을 통하여 자기와 한날한시에 태어났다는 왕자를 동경하게 되었고, 때론 궁전을 찾아가 문틈으로 안을 엿보다가 문지기병사로부터 매를 맞기도 했다. 이를 본 왕자가 달려 나와 병사를 꾸짖고 톰을 자기의 방으로 데려가 좋은 음식을 대접한다. 톰과 이야기를 나누던 왕자는 톰의 생활에 흥미를 느끼고 서로 옷을 바꾸어 입자는 제안을 하게 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신분이 바뀐 왕자와 거지는 각기 황당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들의 일상을 통해 마크 트웨인은 19세기 영국 귀족들의 횡포를 비판하고, 서민들의 애환을 어루만지는 작가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실제로 국왕이 된 에드워드 6세는 과보호 속에서 자란 자신에게 일탈의 기회를 준 톰을 왕실에 중용하고 가난한 이들에 가혹한 법률을 폐지시킨다.
최근 누적 관객 수가 1천만 명을 넘어섰다는 우리영화 <광해>의 줄거리도 뒤바뀐 신분을 소재로 하고 있다. <광해>에는 두 명의 왕이 등장한다. 하나는 진짜요 또 하나는 가짜다. 진짜 왕은 언제 자신의 권력을 잃게 될지 몰라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자신과 꼭 닮은 가짜 왕을 자기 자리에 앉혀놓고 잠시 몸을 피한다.
저잣거리의 만담꾼에서 창졸지간에 조선의 왕이 되어버린, 왕이 되어선 안 되는 천민의 이야기다. 가짜왕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그저 각본대로 왕 노릇을 할 뿐이다. 하지만 예민하고 난폭했던 광해와는 달리 따뜻함과 인간미가 느껴지는 모습에 궁정이 조금씩 술렁이고, 가짜왕은 대역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하루 이틀 가짜 왕 노릇을 하다 보니, 차츰 자신의 힘이 얼마나 크고 영향력이 있는가를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힘없는 백성들을 도와야겠다고 맘먹는다. 가짜 왕이나 왕자는 정치를 모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었다. 백성위에 군림하지 않는, 백성의 편에서 백성과 함께하는 왕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광해>의 광대처럼, 영국의 에드워드왕자처럼 정의롭고 소탈한 지도자를 꿈꾸기는 동서고금 매한가지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