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성탄 대축일 ( Christmas, Sollemnitas in Nativitate Domini )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전통적인 기념일을 ‘크리스마스’로 부릅니다.
아르메니아 교회들을 제외하고 모든 가톨릭교회와 대부분의 그리스정교회, 프로테스탄트(개신교)교회는 이 기념일을 12월 25일에 지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실질적인 탄생일에 관하여 구약전승과 신약성경에는 기록된 바가 없고, 예수의 정확한 탄생일의 날짜나 교회에서 성탄의 의식(儀式)을 실제로 시작한 시기에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336년경, 성탄 축일을 12월 25일로 지키는 관습이 서방교회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이는 로마인들의 이교적인 국가 축제일이었던 ‘태양의 탄신일’(Natale Solis Invicti)을 그리스도교화 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5세기 초에 이 날을 예수성탄 축일로 정식으로 선포하고, 특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하는 이단 아리아니즘에 대항하여 성탄축제를 통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고백하고 정통 교리를 고수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성탄 축일은,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본질을 갖고 계셨으며 예수는 이 세상에 주님으로서 심판자로서 오셨고, 땅과 하늘을 화해시켰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 축일의 성격은 기쁨과 감사의 축제입니다. 중세에는 예수님을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보내 준 중개자라기보다는, 인간 가운데 나타난 영원한 하느님의 아들로 공경했기에 부활절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기도 하였습니다.
서방교회 전례에서는 이 날 밤중과 새벽, 본일 낮의 세 대의 미사를 드리는데, 이는 5세기의 교황 순회미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13세기 이후 모든 사제는 이날 세 대의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탄축제가 시작되던 4세기에는 로마에서도 다른 축일과 같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단 한 번의 미사가 성대하게 이루어졌습니다(지금의 성탄 낮 미사).
그러나 여기에 부활 성야의 축제와 예루살렘의 성탄축제를 모방하여 밤중 미사가 추가되었습니다.
즉 예루살렘에서 한밤중에 베들레헴의 성탄동굴에서 드리던 미사를 모방하여 로마에서도 마리아 대성전에 베들레헴 구유의 모형을 갖다 놓고 성탄 밤중에 미사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성탄의식에는 교회가 이교도의 관습들을 그리스도교화한 것이 많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크리스마스트리로, 이 나무는 에덴동산의 생명의 나무를 상징하고,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전형(典型)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는 일은 성 니콜라오 축일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의 탄생 장면을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보는 표이다”(루가 2:12)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들 특유의 풍습과 민족의상을 동원하여 갖가지 모양의 구유(manger)를 꾸미고 있는데, 이러한 토착화된 구유를 통하여 자기 민족과 그리스도 강생(降生)을 밀접하게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마구간에는 예수 아기가 모셔진 구유와 마리아와 요셉의 상(像), 동물들과 목동들의 상이 놓여지며, 일반적으로 동방박사들의 상은 예수공현축일 1월 2일과 8일 사이의 주일까지 놓지 않습니다.
오늘날 성탄 때 이 구유를 꾸미는 관습은 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이탈리아의 그레치오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아씨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223년 성탄 때, 그레치오 동굴에 베들레헴의 외양간을 본뜬 구유를 만들었던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의 예수 탄생 사건을 재현시킴으로써 당시 신자들이 좀 더 실감나게 성탄의 의미를 깨닫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예수님이 탄생한 구유에 대한 신심이 증가되었고, 작은 모형의 마구간을 만들어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풍속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