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오베(神戶)의 산노미야(三宮)역 근처 작은 여관에 숙소를 정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보도 할 겸 가까운 신사(神社)를 찾았다. 한자로 ‘생전(生田)’이라고 씌어있었는데, 토를 달아놓지 않아 읽을 방법이 없었다.
때마침 참배를 마치고 출근길을 서두르는 한 젊은이를 불러 어떻게 읽느냐고 물었다.
“이쿠다(生田)라고 읽습니다.”
도심에 있는 신사치고는 꽤 규모가 큰 신사였다. 아침 6시쯤 되니 평일인데도 참배객이 부쩍 많아졌는데, 나이든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머리가 희끗한 나와 아내는 그 자리에 걸맞지가 않았다. 한 젊은 여자 분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여긴 엔무스비(えんむすび ‧ 縁結び)신사이거든요.”
남녀 간의 연분을 맺어주는 결연(結緣)의 신(神)을 모신 곳이란다. 하루 빨리 짝을 찾게 해달라고 기원을 하거나, 연모하는 사람의 이름을 쓴 쪽지를 신사의 문살이나 나무에 매어 인연이 맺어지도록 비는 곳이란다.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이쿠다 신사는 일본천황이 서기 201년 해외원정을 갔다가 들른 곳에 세워진 것이란다. 바로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과도 관련이 있는 신사였다. 근엄한 신사의 분위기와는 달리 ‘엔무스비’답게 하트모양의 장식도 여럿 눈에 띄었다. 신사도 퓨전시대를 맞은 것 같다.
이른 아침인데도 젊은이들은 신통할 정도로 줄을 지어 참배를 끝내고 두 번 박수를 친 다음 맑은 우물가로 달려가 입을 헹군다. 그리고 전철역으로 달려간다. 샤머니즘 같지만, 이것이 일본을 움직이는 또 다른 저력이 아닐까 싶었다. 일본, 일본인을 알려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신사를 알아야 한다.
일본 전역에 줄잡아 10만개의 신사를 가지고 있는 그들은 신사가 곧 생활이요 혼(魂)이다. 옷에서부터 심지어는 지우개까지 수만 가지의 신이 있다고 믿고 모시는 일본의 전통신앙이 신도(神道). 그 신들이 사는 곳이 신사다.
어차피 누구나 일본여행을 한번쯤 하게 될 것이고, 신사와 만날 수가 있다. 모든 신사 앞에는 손을 씻는 곳이 있다. 물이 맑고 너무 깨끗해 띄워놓은 나무국자로 우선 한 모금 마시고 싶겠지만, 그 물은 마시는 물이 아니다. 못 마실 물이라서가 아니라 안 마시는 것이 그 나라 예의다. 물론 마신다고해서 누가 말리지는 않지만, 기왕이면 알아두는 게 좋겠다.
신사마다 입구에 있는 우물은 ‘마다라시(みたらし ‧ 御手洗)’라고해서 참배자가 손이나 입을 깨끗이 씻는 곳이다. 우선 국자를 오른손으로 잡고 물을 떠 그 물로 왼손을 씻는다. 다음 국자를 왼손에 바꿔들고 오른손을 씻는다. 다시 국자를 오른손으로 잡고 물을 왼손바닥에 담아 그물로 입안을 가신다.
손바닥에 물을 받아 입을 헹구되 바가지에 입이 닿지 않도록 한다. 입안의 물을 조용히 내뱉는다. 왼손을 다시 한 번 씻고 국자를 세워 남아있는 물로 국자를 씻는다. 더욱 중요한건, 이 모든 동작을 단 한 잔의 물로 마쳐야하며 물을 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사 뒤편엔 이쿠다노모리(生田の森)라는 조그만 숲이 있는데, 수령 500여년의 신목(神木)이 있었다. 그 나무는 고베 대공습 때 불탔으나 끈질기게 되살아나서 재기, 합격, 부활 등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도심 안에 있는 신사치고는 꽤 커서 도시의 오아시스라고 여긴단다.
역사는 역사, 여행은 여행이다. 올여름 오사카나 교토를 가게 되면 한번쯤 들려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