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람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이니셜만으로 ‘GWTW(Gone With the Wind)’라고도 부른다. 여류작가 마거릿 미첼(Mitchell)이 쓴 1860년대 미국 남부사회의 모습과 전쟁, 그리고 사랑의 파노라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Tomorrow is another day)”던 여주인공 오하라(O'hara)의 투혼이 오래토록 기억에 남는다.
최근 미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GWTW’ 논쟁이 뜨겁다. 지난 달 9명이 희생된 찰스턴 흑인교회 총격사건에서 비롯된 소위 남부연합기(Confederate flag) 퇴출운동이 발단이었다. 미국 남동부 찰스턴(Charleston)의 흑인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한 백인 남성 용의자가 붙잡히면서 사건은 인종갈등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지난달 찰스턴의 유서 깊은 흑인교회를 생지옥으로 만든 용의자는 21세의 백인우월주의자인 딜란 루프(Dylann Roof)로 드러났다. 교회 채플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던 신도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9명을 숨지게 하고 달아났던 백인남성 루프는 현장에서 약 400km 떨어진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붙잡혔다.
경찰은 희생자들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됐다고 밝혔다. 그가 범행에 사용한 총기는 생일을 맞아 선물로 받았다는 45구경 권총이었다. 끔찍한 범행 현장에서 살아남은 신도들은 용의자가 흑인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한 뒤 총을 쏘았다고 증언했다.
백인 우월주의자인 범인 루프가 남부기(南部旗)를 들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극중 오하라(비비안 리)가 애틀랜타 역에서 애슐리 윌크스를 애타게 찾아 헤맨다. 역전에는 남부동맹군(Confederate ‧ 북군은 Union)) 부상자가 즐비하다. 장엄한 음악이 흐르면서 찢겨진 남부연합기가 자랑스럽게 펄럭인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부사회를 미화하고 노예제도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미국의 매스컴들은 “이 영화야말로 박물관에나 보관해야할 인종주의적 퇴물”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다만 시대상의 반영일 뿐”이라며 강력하게 옹호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어쩌면 그 옛날 백인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
미 법무부는 연방수사국(FBI)이 현지 경찰과 공조해 이번 사건을 ‘증오범죄’로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오범죄(Hate crime)란 소수인종이나, 동성애자, 특정종교인 등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까닭모를 증오심을 갖고 테러를 가하는 행위이다.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주의자나 쿠 클럭스 클랜(KKK)등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범죄가 여기에 해당된다.
미국의 정치권과 흑인 사회 지도자들은 이번 사건이 인종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흑인에 대한 증오심이 범행 동기였던 것으로 알려져서 이번 사건이 또 한 번 인종 갈등을 촉발시킬지, 미국 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찰스턴의 유서 깊은 흑인 교회에서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인 흑인 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해 추도연설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추도 연설에서 이번 사건으로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부각된 깃발인 ‘남부연합기’를 퇴출할 것과 총기 규제를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40여 분의 연설이 거의 끝날 무렵 그는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f Grace)’를 부르는 깜짝 이벤트를 연출했다.
낡은 깃발과 추억의 영화에 대한 논란은 제2, 제3의 비극을 부를 수 있다. 철거에 들어갔다지만 온 오프라인에서 모든 깃발을 없애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붉은 바탕에 푸른 X자 마크, 남부 13개 주(州)를 상징하는 별 13개가 새겨진 남부기는 오늘도 주 의회 앞마당에 나부끼고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