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로 ‘큰 강(Grand River)’이라는 뜻을 가진 ‘리오그란데(Rio Grande)는 미국 서부를 흐르는 강이다. 장장 3000Km에 걸쳐 텍사스 주 국경도시 엘 파소(El Paso · 영어 The Pass)와 멕시코에 맞닿아 천연의 경계를 이룬다. 옛날 서부 영화에도 자주 등장했다.
수심이 깊고 물살이 빨라 보통 때는 건널 엄두도 못 내지만, 새벽녘에 잠시 강물이 빠져 말을 타고 달릴 수가 있었다. 은행 갱이나 살인강도를 저지른 미국의 도망자들이 이곳을 거쳐 멕시코로 넘어가려다 국방경비대와 총격전이 잦았다. 현재는 몇 안 되는 은퇴 후 휴양지로 엘파소가 각광을 받고 있다.
1950년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은 할리우드 영화 <리오그란데>의 배경이다. 그때 쯤 우리나라도 방문한 적이 있는 존 포드 감독이 톱스타 존 웨인을 기병대장으로 캐스팅 해 인디언의 화살과 맞서 싸우던 그 영화도 역시 이곳에서 찍었다. 지금은 남미 여러 나라에서 미국으로 몰려드는 밀입국자들이 북새통을 이뤄 늘 긴장이 감돌고 있다.
원래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상당 부분에는 이미 장벽이 쳐져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이 장벽을 훨씬 견고하고 높게 만들어 밀입국자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자고 주장하여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 완전히 장벽을 쌓는다면 중국 만리장성 길이의 절반만큼의 거리다.
미국 국경 경비대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밀입국하다 숨진 사람들 시신을 거두는 일이다. 익사자도 많지만 열사병으로 숨지기도 한다. 경비대는 밀입국자들의 은신처를 사막에서 찾아내 숨겨둔 음식과 물을 없애버린다. 그래도 밀입국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사막을 헤맨다. 최근에는 멕시코뿐 아니라 내전과 범죄, 가난을 견디지 못한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려고 한없이 줄을 선다.
멕시코 영화 <신 놈브레(Sin Nombre · 이름도 없이)>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사람들은 '죽음의 열차'라는 멕시코 종단 화물열차에 무임승차한다. 기차 지붕에 올라타다가 떨어져 죽기도 하고 간신히 탄 뒤에 살해되거나 여성들은 성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이들은 온두라스나 엘살바도르 같은 나라에서 온다. 점쟁이는 주인공에게 말한다. "너는 무사히 미국에 도착할 거야. 신이 아닌 악마의 도움으로".
최근 죽음의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던 25세 아빠와 두 살배기 딸이 강 기슭에 엎드린 채 숨져 있는 사진이 세계인을 가슴 아프게 했다. 딸을 업은 채 폭 30m 강을 건넌 아빠가 엄마를 데리러 다시 강을 건너가자 영문 모르는 딸이 아빠를 따라 강물로 뛰어들었다. 놀란 아빠가 다시 딸에게 갔다가 함께 급류에 휩쓸린 것이다. 아이는 아빠 셔츠 안에 있었다. 아빠가 아이를 잃지 않으려 그랬을 것이다.
멕시코 언론과 외신은 이를 두고 '미국 판 쿠르디' 라고 부르고 있다. 불과 3년 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한 장의 사진이 있었다. 파도에 밀려온 시리아 난민 꼬마 ‘쿠르디’의 사진이다. 그 어린 소년은 엄마와 5살 형과 함께 전쟁을 피해 그리스로 가기 위해 지중해를 건너다 결국 모두 목숨을 잃게 된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이렇게 지중해를 건너다 숨진 난민은 확인된 수만 한해 2600여 명 정도. 이는 2차 대전이 발생한 이후 최악의 난민사태이다.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다 숨진 부녀의 사진 한 장이 미 의회에서 5조원이 넘는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유입되는 이주민들을 인도적 지원하기위한 것이다. 미국에 가려면 이렇게 목숨까지 걸어야 하지만, 미국에서 더 나은 삶을 보장받기도 어렵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