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Map 전체메뉴닫 기
본당소개 사목평의회 신앙생활 예비자교리 나눔마당 카페모임 정보마당
사목방침 사목평의회소개 성당일정 천주교 공지사항 카페홈 수원교구
본당소개 산하위원회 미사안내 입교안내 말씀나눔 카페만들기 언론
신부님 주보 교리반소개 자유갤러리 성지
사무실 강론 교리내용 행사갤러리 가톨릭포털
관할지역안내 교리상식 세례명/대부모 오늘의연도 선교
찾아오시는길 이달의말씀 교리상담및질문 열린상담 해외성당
이달성가 모집안내 투표 정기간행물
 
       
 
본당소개 사목평의회 신앙생활 예비자교리 나눔마당 카페모임 정보마당
 
나눔마당 > 말씀나눔 > 여명을 당당하게(지난 1월 동창회보에 실렸던 글)
여명을 당당하게(지난 1월 동창회보에 실렸던 글)
우재구
작성일 : 12-05-16 16:23  조회 : 24,264회 
 
여명을 당당하게
 
“생신 축하합니다, 생신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합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아들 손자며느리가 모여앉아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꽂아 놓고 전등불을 다 끈 다음 손 백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끝나면 눈을 감고 소원을 빌라한다. 소원이 끝나면 촛불을 훅 불어 끄라고 한다. 큰 촛불 7개와 적은 촛불 7개를 한 번에 훅 불어 끄면 ”야, 우리할아버지 힘 좋다“라고 소리치며 또 박수를 친다. 지난 8월15일 수지 상현동 K 할아버지 집에서 있었던 생일 파티였다. k씨는 금년 77세 희수(喜壽)다.
 
할아버지 생일 파티가 끝나자 서울 강남에 사는 아들 며느리, 손자들은 내일 일직 출근하고 학교 가야한다면서 서둘러 일어난다. 40대 초반의 며느리는 70세가 넘은 시어머니에게 저녁 설거지는 접시 세척기를 쓰라고 하면서 집을 나선다. 아파트 정문까지 마중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안녕히 계세요” 인사한 후 아들 식구들은 BMW를 타고 황급히 아파트를 빠져나간다. 아들 식구들을 떠나보내고 아파트로 돌아 온 노부부는 저녁 먹은 식기들을 깨끗이 씻고 응접실을 정돈 한다. 정돈이 끝나면 여느 때같이 아파트는 다시 조용한 정적에 잠긴다.
 
K씨는 1954년 B광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S대 경제과에 입학했다. 태산을 이고 벽해를 뛰어 넘을 듯한 기개로 청운의 꿈을 키워 온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 당시 최고 직장이었던 H은행에 들어갔다. 외국어 실력을 비롯하여 업무처리에 남다른 강점을 보인 탓에 입행 후 5년 만에 H은행 런던지점으로 발령 받았다.
 
결혼한 아내, 두 아들과 함께 런던으로 갔다. 가난에 찌든 서울 생활을 뒤로하고 영국 런던으로 가는 것은 기대요, 희망이요, 기쁨이었다. 2살, 4살 아들과 아내와 함께 비행기에 오르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뉴욕과 더불어 세계금융 중심지인 런던에서 5년, 귀국 후 얼마 안 되어 다시 런던지점으로 발령이나 또 5년 등 런던에서 만 십년을 보냈다. 국제금융의 일인자가 된 K씨는 그 후 독일, 스위스에 이어 동남아시아의 홍콩, 싱가폴 지점장으로 도합 20년 이상을 해외지점에서 근무하였다. 자연 두 아들은 부모 덕택에 유치원, 초등학교부터 영국, 독일에서 다니고 대학은 모두 미국 명문대학에서 공부하였다. 후진 한국에서 맛 볼 수 있었던 가난과 고난은 저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싱가폴 근무를 끝으로 은행생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경력이나 자질은 중역이 되고도 남았으나 해외근무만 하다 보니 국내 인맥이 없었다. 해외에만 있었으니 고도 성장기에 흔히 있었던 재택크로 자산을 늘리지도 못했다. 시중은행의 중역 승진은 경쟁자가 많았다. 실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리하여 K씨는 중역승진에서 탈락하고 H은행과 연관이 많은 A보험회사의 중역으로 갔다. 제2 직장에서 몇 년 근무하다가 60세를 끝으로 직장생활을 접고 말았다.
 
아들 두 명 중 장남은 미국에서 공부한 MBA경력을 살려 영국 런던에서 우리나라 전자제품을 구입하여 현지에서 판매하는 에이전트 사업을 시작하였다. 사업은 점차 괴도에 올라 돈을 잘 벌었다. 둘째는 서울에 있는 미국계 투자회사 UBS에 취업하였다가 메리린취로 스카우트되어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40대 후반 중견간부가 되어 연봉이 몇 억대가 된다고 했다.
 
두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으로 새 출발할 때 아들 각자에게 성남 분당에 30평짜리 아파트를 한 체씩 사 주었다. 영국에 사는 장남은 아버지가 사준 분당 아파트를 전세주어 그 돈으로 재택크를 하고 있다. 둘째는 억대 년 봉에 힘입어 그 30평짜리를 팔고 강남에 있는 60평 아파트로 옮기었으며 부부가 각각 BMW를 타고 다니는 상류사회 인사가 되었다.
 
K씨는 퇴직 후 5년은 강남에 그대로 살았다. 수입이 없으니 저축했던 돈은 점점 줄어들었다. 불안 해 졌다. 은퇴 후 생활비가 비싼 강남에 살 필요가 없다고 느껴 2000년 초에 수지 상현동의 50평 아파트로 이사 했다. 수지 아파트를 사고 남은 돈으로 분당에 오피스텔을 한 체 사서 월세수입을 확보했다. 오피스텔 월세 수입과 50만 원 정도의 국민연금, 그리고 남은 돈으로 생활을 이어왔다.
 
물가가 올라 생활비는 늘어나니 가정경제는 점점 어려워 져 갔다. 대책은 하나도 절약, 둘도 절약이었다. 자기는 구형 그랜저 3000을 그대로 타고 다니면서 집안, 친구들의 경조사 참석도 차차 줄이기 시작했다. 한참 잘 나갈 때 왜 노후대책을 준비하지 않았던가?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다. 1930-50년 사이 태어난 우리나라 개발세대들은 일에 파묻혀 살았기에 노후를 위한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
 
생활이 어려워지자 그는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의 생활여건을 탐문하여 보았다. 노후 대책 없이 노년기를 맞이한 한국의 노인은 쉽게 가난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전체 노인 중 중위 소득미만에 속하는 노인의 비율)은 45%로 OECD회원국 중 단연 1위다. 일본 22%, 그리스 23%,미국 24%의 두 배에 달한다. 한국에 이어 노인 빈곤율 2위인 아일랜드보다 14%포인트나 높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5년 연간 2038건이던 노인 학대 신고 건수가 2010년 3068건으로 5년 새 50%이상이 증가했다. 노인 학대는 신체적 폭력, 언어폭력, 부양 포기, 유기(遺棄)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올해 초 국가인권위 조사에선 노인 다섯명 중 한명(19.7%)꼴로 학대를 받고 있다고 나타났다. 이는 미국, 캐나다, 영국의 5-10%보다 높은 수준이다.
 
학대받는 노인들에 비하면 그래도 K씨는 형편이 좋은 편이다. 그렇지만 재산이 자꾸 줄어드니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둘째 아들에게 월 몇 백만 원씩 도와 달라 할 가도 생각해 보았다. 부부가 상의 하여 보았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정을 전연 눈치 체고 있지 않았다. 아마 년 봉이 2-3억 원이 넘어도 수입이 많으면 씀씀이 또한 커지니 부모를 도울 여유가 없을 지도 모른다. BMW를 두 대나 굴리고 큰집에 설면서 아이들을 최고급 학원에 보내는 등 상류층의 생활을 이어가면서 자기들 지금 생활수준을 퇴직 후에도 이어가려 준비하려면 오히려 현재의 수입이 적다고 한탄 할 지도 모른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니 아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K씨는 자식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키우는 것만이 좋고 올바른 교육인 줄 알았다. 이제 와서 보니 잘못 키웠다는 느낌이 든다. 모두 자기 책임이다. 그렇다.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사람은 자신 이외 다른 사람 사정은 모른다. 이기적이다. 인생의 회노 애락을 모른다. 늘 세상은 좋은 일만 있고 나쁜 일은 남의 일로 치부된다. 인생에는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몹쓸 병에 걸리거나 좌절할 때도 있다. 그런 좌절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만 인생의 깊이가 더해지는데 두 아들은 부모 덕택에 풍파 없이 살아 왔기에 세상물정에 어둡다.
 
K씨는 자신의 불찰이 결과한 일이니 이제 자기가 어렵다고 자식에게 손 내미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살아 갈 방도를 찾자. 나의 과거를 속죄한다는 의미로도 자식들 도움 없이 살아가야 한다고 마음을 궂히었다.
 
희수의 나이에 남은 재산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 가?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끝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낙향이다. 수지 상현동 집을 팔아 그 돈으로 고향에 내려가면 아파트는 물론 텃밭이 붙은 단독 주택도 구입 할 수 있다. 지방은 생활비가 서울의 반 이하라 한다.
 
낙향하기로 마음을 정하니 자식에 대한 원망이나 기대도 사라지고 오히려 아들 손자는 그대로 대견해 보였다. 다시 옛날 같은 부모 마음오로 돌아 온듯하여 기뻤다. 과거에는 낙향자의 애로가 지방의 낙후된 병원 시설과 흉금을 털어 놓을 친한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KTX가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들었고 희수가 넘은 나이는 모여앉아 웃고 마시고 즐기는 친구보다 성당 이나 교회에서 교우들과 형제자매 같이 지내면 외로움은 쉽게 극복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나이에는 어디를 가나 고독과 사귀며 인생을 관조하면서 조용히 살아야 한다고 느꼈다.
 
금년 10월 말로 B광역시로 낙향한다고 하니까 아들과 며느리는 아버지 어머니 왜 시골 가시느냐고 펄쩍 뛴다. 가지 말라고 말린다. 시골이 좋아서 간다고 만 말 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진짜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이 좋아서 가는 걸로 알고 있다.
 
자립하여 여명을 살아간다고 마음을 궂히니 좋은 부모가 된 듯 느꼈다. 다시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시골 가서 텃밭도 일구고 일하면서 노후를 보내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냥 기쁘다. 돈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아들 손자들의 성장을 그대로 지켜 볼 수 있으니 한없이 행복하다. 부부가 힘 모아 청소하고 설거지 하고 세탁하는 등의 가사노동을 즐기며 살아간다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듯 했다.
 
일본의 유명한 노(老) 작가 소노 아야고(曾野綾子)씨는 지난 7월 출간한 저서 “당당하게 늙고 싶다”에서
노인들은 누구에게 기대지 말라, 자립하라,
죽을 때까지 일하라,
돈에 얽메이지 않은 정신을 가지라,
고독과 사귀며 인생을 즐기라,
늙음, 질병, 죽음과 친해지라,
신을 믿으라 는 등의 좋은 지혜를 우리들에게 말해 주고 있다. 당당하게 늙어 갈 노인의 지혜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니 즐겁고 행복한 여생이 초원처럼 펼쳐졌다. 끝 우재구
 
 
 
 
 
 
 
 

   

 
동천성바오로성당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수집거부 홈페이지 이용문의
천주교안내 성당사무실 성당일정 카페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