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Troy)는 터키 서쪽에 자리한 고대 유적도시다. 현지에선 트로야 또는 트로이아라고도 부른다. 호메로스의 그 유명한 <일리아드> <오디세우스>에 나오는 트로이의 전설은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며, 호메로스 서사시의 근간을 이룬다. “가볼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마라. 죽을 고생해서 찾아갔더니 허허벌판에 ‘여기가 트로이요‘하는 간판 하나밖에 없더라고~.”
친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으나, 1870년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 (Schliemann)이 그곳을 발굴하면서부터 이론은 있었다. 물경 BC 4000년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왕궁과 금은 제품만으로 호메로스 시대의 것이라고 믿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트로이 전쟁(Trojan War)은, 전쟁 그 자체보다 트로이의 목마(Trojan Horse)와 1957년 할리우드 영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트로이의 헬렌(Helen of Troy)이 더 유명하다. 전쟁의 발단은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약 3100년 전,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름다운 왕비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Paris)의 유혹에 빠져 남편과 딸을 버리고 에게 해(海)를 건너 트로이로 건너간다. 화를 참을 수 없던 메넬라오스는 자신의 형이자 그리스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던 미케네 왕국의 왕인 아가멤논에게 아내를 되찾기 위한 원조를 요청하였다.
모든 그리스 왕들은 제각기 병력을 이끌고 집결하였다. 그들은 아가멤논을 사령관으로 뽑고 , 14척의 배와 수만의 군대를 이끌고 트로이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이 원정은 번번이 실패한다. 10여년에 걸친 오랜 전쟁에 지쳐 그리스군은 오디세우스의 계략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리스군은 퇴각하는 척하며 해변에 거대한 목마를 남겨둔 채로 트로이 인(人)들이 보는 앞에서 배를 타고 해안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은 트로이 인근에 있는 섬에 숨는다.
퇴각할 때 그 혼자 남겨둔 병사가 트로이군의 포로가 되어 “오디세우스에 버림을 받았다”고 호소하며, 목마는 그리스인이 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것인데 항복의 의미라고 말했다. 트로이 인들은 그의 말을 믿고 매우 기뻐하며 그 큰 목마를 안으로 끌어들이고 잔치를 베풀었다. 목마 안에는 그리스의 정예 병사들이 숨어 호시탐탐 공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트로이 군(軍)이 승리의 기쁨에 도취돼 모두 잠들어 있는 틈을 노려 목마 속에 숨어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튀어나와 성을 점거한다는 줄거리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는 뒤늦게 속은 것을 알고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데리고 달아나자 근처 섬에 매복해 있던 그리스 원정대가 트로이를 완전 정복한다는 것. 이 이야기는 수세기 후에 기록되었고 어디까지가 실제 역사상의 사건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작중 그리스장수 오디세우스가 젖먹이 아들을 두고 출병할 때 ‘멘토르’라는 부하장수에게 아들의 장래를 부탁한다. 멘토르는 약속을 지켰다. 그의 아들을 잘 돌봐 너무나 훌륭하게 키워, 지금도 훌륭한 스승을 ‘멘토(Mentor)’ 라고 부른다.
"시리아 난민들이 위장된 군병(軍兵) 같다.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미국 공화당 대선 선두주자 도널드 트럼프(Trump)가 최근 이민자와 시리아 난민들을 군인에 비유하며 막말을 했다. 미국의 시리아 난민 수용에 대해서 거듭 반대 입장을 밝혔다. 줄잡아 3천 여 년 전 역사 반, 신화 반의 트로이 목마가 오늘날 현실 속에서 되살아 날 수도 있다는 것일까.
트럼프는 방송에 출연해 "난민들이 대부분 강인한 남자다. 마치 군인들 같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특히 수니파 무장반군 이슬람국가(IS) 대원들이 난민으로 위장에 입국할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이들 난민은 자칫 '트로이의 목마'로 변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적어도 1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