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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마당 > 성지 > 서천교(조윤호 요셉 순교지) |
작성일 : 11-06-28 16:09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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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과 함께 한 순교의 길
- 이곳은 성 조윤호(요셉, 1848-1866년)가 1866년 12월 23일 치명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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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에는 형벌에서도 삼강 오륜을 지켰는데, 부자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칼로 처형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아버지인 성 조화서(베드로)보다 한 장날 늦게 서천교 밑에서 장살, 걸인들로 하여금 새끼줄로 목을 감아 끌고 다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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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의 어린 나이에 순교한 조윤호는 충청도 신창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나 돈독한 신앙 생활을 어려서부터 익혔다. 1864년 부친을 따라 전주 근처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한 후 이 루시아와 결혼한 그는 1866년 12월 5일 부친 조화서, 정원지, 이명서 등과 함께 성지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된다. 전주 감영에서 부친과 여러 차례에 걸친 신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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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친인 조화서는 일찍이 최양업 신부의 복사로 전교 활동을 도왔다. 그는 1839년 기해박해로 부친 조 안드레아(성 조윤호의 조부)가 순교하자 충청도 신창으로 이주해 한 막달레나와 결혼, 아들 윤호를 두었고 이 때 최양업 신부의 복사로 최 신부의 전교와 성무 활동을 보필했고 그 후 전주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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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병인박해의 와중에서 체포된 이들 부자는 혹독한 고문과 배교의 강요 속에서도 서로 격려하며 오직 진리만을 말하기로 다짐한다. 옥에서 아버지는 아들 윤호에게 "네 마음이 변할까 염려된다. 관장 앞에서 진리대로 말하여라." 하고 격려했고, 이에 아들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버님께서도 조심하십시오."라며 죽음의 두려움보다는 배교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 것을 서로 독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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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아버지 조화서는 후손이 끊어지는 것을 염려하는 체하며 자신을 회유하려는 관장의 유혹에 여러 번 넘어갈 뻔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마침내 조화서는 모든 유혹과 형벌을 이겨 내고 12월 13일, 전주 전동 성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서천교 밑에서 성지동과 대성동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들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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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아들 조윤호 역시 부자를 한날 같은 장소에서 처형하지 않았던 당시의 관례에 의해 부친이 참수된 지 열흘이 지난 12월 23일 같은 서천교 밑에서 순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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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하여 굳건한 믿음으로 순교의 길을 택한 이들 부자는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이어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관련 정보
- 소속 : 전주교구
- 주소 : 전남 전주시 완산구 서완산동
- 전화 : 전동 본당 사무실 (063) 284-3222
- 위치 : 전주시 남쪽을 가로지르는 전주천의 중앙부에 걸려 있는 서천교를 건너면 오른쪽 도로변에 조윤호 요셉 순교지가 있다. 서천교 아래쪽 완산교를 건너 좌회전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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